20세기의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세기의 팝 아티스트, 현대미술의 아이콘인 앤디 워홀은
“당신이 어떤 사물을 지나치게 오래 보면, 그것의 의미를 모두 잃어버릴까 두렵다.”라고 했다.
“I’m afraid that if you look at a thing long enough, it loses all of its meaning.”
(Andy Warhol)
그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가 보는 모든 이미지 들을 화폭 속에 담아내길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의미는 사물이 지니는 고유한 의미를 직관으로 보아야 한다는 그의 시각론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인지 앤디 워홀의 작품 속 이미지는 이렇게 대부분이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면서 대중에게 익숙하면서 유명한 단순 이미지를 담아냄으로써 동시대 문화의 팝적인 이미지를 직관으로 포착,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해체하면서 시각예술에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이 순간 현종광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앤디 워홀의 대중적 아이콘을 떠올리는 것은 유학 시절 그가 자동차나 코카콜라 병뚜껑의 대중적인 오브제를 마치 워홀처럼 작품 속에 차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종광도 기본적으로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오래 보는 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때로는 모노톤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때로는 풍경 속의 특정 부분을 다른 컬러로 변형시키면서 직관적인 풍경을 현종광은 과감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표현한다.
그 풍경은 각기 다른 컬러로 탈색되거나 변형되기도 하며 역사적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의 <군인> 풍경 같은 작품은 마치 워홀의 마릴린이나 재클린이나 케네디처럼 반복적으로 펼쳐진다.
그는 잔상(afterimage)을 그의 화두로 삼고 있다. “하나의 이미지가 사라진 후 일시적으로 남아있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이며 또렷하지 않은 개입 현상“인 이 잔상을 그는 화폭 속에서 구현한다. 마치 표현 불가능한 잔상을 담아내는 것이다.
<Theatrical Landscape> 역 이미지 표현의 모습과 <그리드 바스킷> 에서 보여지는 중첩된 나열형도 있다. 연극적인 풍경에서는 역 그리드의 무늬로 이미지를 극적으로 전환 시켜 이미지의 반전을 이끌고 있다.
물론 이전의 작품에서는 마치 정밀한 스케치나 밑그림처럼 훨씬 더 정교한 표현으로 완결된 작품들과 밀접하게 반복적으로 연결 구성되어 있어 그의 치밀한 관심과 표적이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처럼 우아하고 완벽한 세밀함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최근 현종광의 작업들은 독자적인 풍경의 표현에 집중된 양식을 바탕에 배치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주목했던 것이 대중적인 아이콘의 오브제에서 함몰하지 않고 넘어서 보다 확장되고 개방된 이미지를 화폭에 끌어들이는 시선의 자연스러운 확장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화려한 색채 중심의 풍경보다는 표현의 섬세함과 컨셉, 혹은 그 이미지에 집중하는 일종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회화적 길을 탐색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런 관점에서 현종광에게 풍경의 전면에 드리워진 <그리드>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필터이고 시선이고 방법임을 입증한다.
나는 그것이 그가 풍경을 바라보는 방법, 그 이후의 느낌, 흔적, 남은 이미지 그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아마도 그는 이것을 잔상이라고 규정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회화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회화에 침몰하지 않고 작품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선. 그것에서 그리드는 하나의 풍경을 바라다보는 그만의 안경 혹은 렌즈일 수 있다.
그는 종종 스스로 그리드(grid)를 원본이 소멸된 부재 속의 잔상적 이미지를 일시적으로 드러내고 고정시키며 담을 수 있는 성유물함과 같은 도구(screen, container)이다. 나에게 그림의 모체(matrix)인 그리드는 실체의 부재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잔상들을 지연시키는 물리적 또는 정신적 좌표”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표적인 2018년의 <비어있는 풍경>Empty Landscape의 작품은 그가 공간에서 어떻게 새로운 표현이 가능한 거를 보여주는 흥미롭고 대표적인 작품이다.
회화가 풍경 속에서 자유롭게 해방된다는 것은 그리드를 통하여 무엇이든지 제작 할 수 있다는
아방가르드적인 출발점임을 그는 익히 숙지하고 있다.
작가는 순수한 조형적인 구조로서의 그리드를 연구하기보다는 회화 속에서 그리드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1418 Hammocks View>에 자동차의 그리드가 그러한 예이다.
그리드란 수평과 수직선의 교차에 의해 구성된 격자형태의 구조이다. 즉 수평과 수직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평면의 선위에 그는 풍경을 올려놓거나 그리드로 가둬 놓는 것이다.
나는 현종광의 표현언어가 우선 매우 독창적인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화면 전경에 그리드라는 일정한 사각 형태의 선들을 장치한다는 것이다.
그 그리드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는 차치하고라도 사물과 풍경을 일상적 시선으로 보지 않으려는 그의 예술가적 시각과 창조성에 초점을 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법론이 그의 예술적 시각을 확대하거나 변형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의 시선을 이렇게 상상하기로 했다.
풍경을 구성하는 이 시각적 방법론이 혹시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서 본 그 그리드가 아닌가 라는 점이다.
보통 카메라 뷰로 보면 이렇게 일정한 형태의 그리드가 나타난다.
작가는 바로 이 풍경의 구도를 통하여 구획된 시선으로 그때 보여진 그리드의 시선 처음 카메라 뷰로 본 풍경의 잔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려지기 이전에 그가 본 그리드와 함께 본 그 형태를 실체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여기에서 시작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색채도 단일한 모노톤의 색채를 고집하기보다는 잔상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음색을 다양한 조형적 언어로 드러내는 방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현종광의 작업은 이렇게 회화에서 그리드 형식이 나아갈 수 있는 발전 가능성에 대한 물음에 과정에 서 있다.
그 자신만의 독자적인 구조를 지닌 풍경과 오브제의 세계를 쟁취하고자 노력한다.
그리드를 통해서 본 그의 다양하고 인상적인 풍경은 마티스가 모든 그림 속의 풍경과 인물을 상상력의 색채로 바라다 본 것과, 세잔느와 피카소가 모든 대상을 입체적으로 보려 했던 창조적인 자세의 사실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고집스러움이 있다.
다만 그 수평과 수직의 구조적인 그리드의 조형이 얼마만큼 독자적인 표현으로 가능할 것이며 다른 시선과 형태는 더 없는가 고민해 볼 필요는 없는가이다.
그러기에 그리드를 통해 성취하려는 그의 풍경과 오브제에 관한 작가적 고백은 너무나 진지하고 아름답다.
“격자선 안에서 행해지는 나의 그림 행위는 더 이상 그리드를 둘러싼 많은 회화적 담론들을 동반한 거대한 서사시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풍경 또는 인체를 둘러싼 사실적 화면과 연관시키지 않으며, 구체적이지도 않고, 회화의 절대적 자율성을 강조하지 않으며, 단순히 과거 또는 현재의 어느 ‘발견’으로 언급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거대한 모더니티의 유산인 그리드는 구조적, 신화적 특성과 결합하여 역설과 모순적인 회화적 잔상들을 재배열하고 지연 한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